[MZ이슈] 미국의 Z세대에게 '플렉스'는 없다...치솟는 물가에 소비문화 급변

美 Z세대의 56%, '치솟은 생활비'(higher cost of living)를 재정적 성공의 걸림돌로 인식
Z세대 73%, "지난 한 해 동안 물가 상승 탓에 소비 습관을 바꿨다"고 응답해
소비 줄이는 Z세대 속사정은 천차만별...'선제적 대응'부터 부채에 몰린 '불가피한 선택'까지
Z세대의 지출은 2% 이상 감소했지만 베이비 부머 세대 지출은 2.5% 증가
[굿잡뉴스=이성수 기자] 우리나라의 MZ세대는 상당수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높은 주택가격과 사교육비 부담, 개인적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로 분석된다. 대신에 '플렉스(flex)'를 갈망한다. 플렉스는 '과시적인 소비'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1990년대 미국의 유명 랩퍼들이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행위’란 의미로 사용했다. 이 행위는 힙합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1020세대들은 랩퍼들의 플렉스를 따라했다. '과시적 소비'의 대상은 명품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운동화, 가방, 의류 등을 구입해서 착용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과시하는 것은 전세계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적 취향으로 굳어졌다.
이 같은 '플렉스'와 정반대의 문화적 트렌드가 형성돼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의 Z세대이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속에 소비 지출을 줄이는 등 생활 습관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Z세대로 분류되는 18∼26세 응답자의 53%가 재정적 성공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인으로 '치솟은 생활비'(higher cost of living)를 꼽았다.
또 Z세대 응답자 4명 중 3명꼴인 73%가 "지난 한 해 동안 물가 상승 탓에 소비 습관을 바꿨다"고 답했다.
외식하는 대신 집에서 더 자주 요리하고(43%), 옷에 쓰는 지출을 줄였으며(40%), 식료품 구매를 필수적인 품목으로 제한한다(33%)는 것이 구체적인 변화상으로 꼽혔다. 이렇게 소비 습관을 바꿨다는 이들의 대부분은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고물가의 압박이 줄더라도 향후 1년 동안 이런 상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물론 Z세대 데이터만으로는 Z세대가 유의미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모든 세대가 치솟는 생활비를 줄이려고 절약과 소비감축에 나섰다면, Z세대의 행태는 '세대의 특징'이 아니라 '시대의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유의미한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 사이의 세대별 소비 조사에서도 베이비 부머 세대(1946∼1964년생)의 지출이 2.5% 증가한 반면, Z세대의 지출은 2%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은행의 소매금융 부문 홀리 오닐 사장은 "이 젊은 세대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돈을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을 조정하는 데 있어 탄력적이고 수완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Z세대의 경제생활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Z세대가 선제적 대응의 차원에서 외식과 옷 구매 지출을 줄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재정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Z세대 응답자 10명 중 4명꼴(37%)로 저축액 감소나 부채 증가 등 어려움을 경험했으며, 이들 중 27%는 친구나 가족에게서 돈을 빌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가피하게 소비를 줄이는 Z세대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친구와 가족에게 의존하는 이유로는 해당 응답자의 절반 이상(56%)이 비상 상황 발생 시 3개월 치 비용을 충당할 만큼 저축액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Z세대의 소비 줄이기는 내면적으로 복잡한 이유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이 부족하지 않지만 경제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부류와 자신의 소득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져서 소득을 줄이는 부류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Z세대의 경제 전망 역시 어둡다는 점이다. 향후 1년 동안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비율은 24%로, 2021년 조사 당시 같은 응답 비율(41%)보다 훨씬 낮아졌다. 고용 시장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비율도 32%로, 2021년의 46%보다 감소했다. 긍정적 경제전망의 비율이 절반으로 급락한 셈이다.
2024년을 내다보며 Z세대가 최우선으로 삼는 과제는 교육 수준 향상(36%), 경력 발전 또는 연봉 인상(31%),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31%) 등이었다. 이 조사는 지난 8월 15∼28일 미국의 Z세대 1천16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표본 오차 범위는 95% 신뢰 수준에서 ±3.6%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