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잡뉴스=권민혁 기자]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산하 주요 계열사에 대해 전 직원의 AI(인공지능) 사용을 의무화하는 파격적인 방침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라인야후(LINE Yahoo)와 통신사 소프트뱅크, 결제 자회사 페이페이(PayPay) 등은 직원들의 업무 전반에 AI 도입을 전면적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12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経済新聞)은 “손정의 회장이 지휘하는 기업들이 시장 분석, 회의록 작성, 업무 자동화 등 거의 모든 사무직 영역에서 AI 사용을 직원들에게 의무화하는 규정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는 전 직원이 AI 앱 개발 프로젝트에 강제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며, 페이페이 역시 인사·노무 업무 전반을 AI 기반으로 재검토 중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일본 직장 사회와 산업계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손정의의 AI 의무화, 왜 지금인가?
손정의 회장의 이번 결정은 단지 기술 트렌드를 따르기 위한 ‘유행성 조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난 1년간 AI가 인류의 모든 산업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이라는 신념을 강하게 밝혀왔고, 이번 AI 의무화는 그 신념을 실행에 옮긴 첫 조직 혁신 실험이다.
손 회장은 2023년부터 “AI가 인간의 창의력과 생산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특히 그는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확산이 일본의 경직된 노동시장과 비효율적인 사무 관행을 혁파할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가 오너이자 의사결정권자로 있는 기업에서 AI 사용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정한 것은, AI가 단지 툴이 아니라 조직의 지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철학적 전환을 의미한다. AI를 제대로 쓰지 않는 직원은 결국 기업의 ‘지적 자산 축적’에 기여하지 못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일본 직장인의 AI 사용률이 낮은 이유 3가지
손정의가 이번 조치를 단행한 데에는 일본 직장인 특유의 ‘기술 보수성’과 조직 문화의 폐쇄성도 작용했다. 실제로 일본은 AI 활용률이 세계 평균을 크게 밑도는 국가로 꼽힌다.
2024년 마이크로소프트 재팬·IDC 재팬 공동조사에 따르면, '일본 직장인의 생성형 AI 사용률'은 32%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7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처럼 낮은 사용률은 다음 세 가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①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와 자율적 실험의 결핍
일본 기업은 여전히 위계적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정형화된 업무 프로세스에 기반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새로운 도구나 방식을 도입하는 데 심리적·조직적 장벽이 높다. AI를 실험하거나 업무에 적용하는 행동 자체가 상사 승인 없이는 위험한 ‘변칙행위’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② 기술에 대한 ‘완벽주의적 태도’와 실수 회피 문화
일본 직장인들은 실수를 극도로 꺼리는 문화에 젖어 있다. AI가 내놓은 정보가 부정확할 가능성을 걱정해 업무 효율성보다 정확성과 책임 회피에 방점을 둔다. ‘AI의 조언을 그대로 따랐다’는 이유로 업무 오류에 휘말릴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③ 고용 안정성과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
일본 기업은 여전히 연공서열 중심이며, 성과보다 근속연수가 인사고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AI를 잘 다루든 그렇지 않든, 승진과 보상에 직접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기술 학습에 대한 내적 동기가 약하다. 특히 40~50대 중간 관리자층은 디지털 도입을 저지하는 주요 보수층으로 작용한다.
손정의의 AI 의무화, 일본 직장문화에 주는 3가지 충격
손정의 회장이 추진하는 ‘AI 의무화 실험’은 단지 계열사 몇 곳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일본 산업계 전반에 다음 세 가지 파급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① 일하는 방식의 ‘강제적 디지털 전환’
기존에는 DX(Digital Transformation)를 슬로건으로만 채택하던 기업들이, 손정의 모델을 벤치마킹하며 AI를 인사평가 및 업무매뉴얼에 명시하는 조직이 늘어날 것이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의무적 AI 사용 가이드라인 도입이 확산될 경우, 일본의 ‘형식적 디지털화’는 ‘실질적 전환’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② ‘신세대-중간관리자’ 갈등 격화
AI에 능숙한 2030대 젊은 직원들과, 디지털 문맹에 가까운 4050대 관리자들 사이의 역전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AI를 잘 쓰는 직원이 더 빠르게 성과를 내고 주목받게 되면, 기존 조직의 위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일본형 고용시스템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③ 일본 기업 전반의 경쟁력 재편
AI를 업무에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결정하는 시대다. 손정의의 AI 실험이 성공할 경우, 일본 내에서도 AI 도입이 빠른 기업군과 그렇지 못한 기업군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며, 이는 산업 구조 자체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손정의 모델’, 일본 노동문화의 시험대 되다
일본 언론들은 손정의의 이번 조치를 “전례 없는 AI 조직 개편 실험”(요미우리신문), “일본 직장문화에 던지는 도전장”(아사히신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문화·인사제도·노동윤리까지 흔드는 거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손정의의 AI 사용 의무화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등 기술 도입이 정체된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전례가 될 수 있다. AI를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시대, 손정의는 다시 한번 미래를 먼저 살아가는 실험가로 나섰다는 평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