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AI 병목을 스피드로 뚫겠다”
[굿잡뉴스=이성수 기자] 28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퓨처테크포럼 AI’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의 핵심 부대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단순한 환영사 대신, 대한민국이 AI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를 많이 지어야 하는 현재, 그 안에 들어가는 칩부터 에너지까지 모두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며 “한국은 스피드를 발휘해 이 병목을 풀어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최 회장은 인공지능의 진화가 기존의 ‘리즈닝(Reasoning) AI’, 즉 논리적 사고와 추론 중심의 AI—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틱(Agentic) AI)’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칩, 에너지, 데이터 인프라의 병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핵심 동력이 ‘스피드’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은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진화시키는 DNA를 가진 나라”라며 “인터넷과 모바일 역사에서 그 속도를 이미 증명해왔다. AI 역시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진화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이날 제시한 세 가지 키워드인 병목, 스피드, 협력은 단순히 산업 전략이 아니라, AI시대 인재가 갖춰야 할 생존의 조건이기도 하다. 최 회장의 발언은 결국 ‘기술의 시대를 주도할 인간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병목, 복합 문제를 풀어내는 융합형 설계자를 요구
최 회장이 언급한 ‘병목’은 단순한 반도체 수급난이나 전력 부족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데이터, 에너지, 기술, 윤리, 규제가 한꺼번에 얽힌 복합적 병목(Complex Bottleneck)을 의미한다. AI 산업은 이제 한 부문만 잘해서는 성장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고, 칩 생산, 데이터 저장, 에너지 효율, 친환경 정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복합병목 시대에는 단일 기술 전문가보다, 문제를 시스템 전체로 바라보고 통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최 회장의 발언을 AI 인재상으로 번역하자면, ‘융합형 설계자(Fusion Problem Solver)’가 그 주인공이다. 기술과 경제, 공학과 윤리를 연결해 전체 구조를 설계하고, 각 영역의 제약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파악해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AI 병목을 풀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이해하는 개발자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구조, 에너지 효율 기술, 국가적 규제 프레임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복합 사고력이 요구된다. 최 회장이 말한 병목은 곧 “단일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스템적 문제”,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총체적 사고를 갖춘 인재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스피드, 빠른 실행과 학습을 반복하는 애자일 러너 요구
AI 기술의 변화 속도는 눈부시다. 모델은 몇 주 단위로 업그레이드되고, 새로운 데이터 구조가 하루아침에 등장한다. 이런 환경에서 ‘기다리는 인재’는 도태된다. 최태원 회장이 말한 ‘스피드’는 단순한 민족적 특성이 아니라, AI산업의 초단기 기술주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능동적 역량을 뜻한다.
그가 언급한 한국의 스피드는 계획보다 실행을, 완벽함보다 적응력을 중시하는 문화와 연결된다. AI시대의 핵심 인재는 ‘애자일 러너(Agile Runner)’, 즉 빠른 실행과 학습을 반복하는 순환형 인재다. 이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기술을 실험하고 수정하며, 배움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스피드는 단순히 ‘빨리 움직인다’가 아니라 ‘빨리 배우고, 더 빨리 개선한다’는 뜻이다. AI시대의 경쟁은 기술력보다 학습 속도의 싸움이다. 최 회장이 강조한 한국형 스피드는 바로 이 지속 학습의 속도, 그리고 실행력과 적응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신적 민첩성(agility)을 의미한다.
협력, 생태계를 연결하는 글로벌 코랩형 인재 요구
최 회장은 이날 “AI는 개인플레이가 아니라 협동플레이다”라며 “글로벌 플레이어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의 울산 AI 데이터센터 건립, 오픈AI와의 스타게이트 협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기술 자립과 신뢰 기반 협력, 두 가지가 병존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산업은 이제 한 기업이나 한 나라가 독점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데이터, 알고리즘, 하드웨어, 에너지, 윤리 기준까지 모두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필요한 인재는 단순한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글로벌 코랩(Global Collaborator)’, 즉 협업 구조를 설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율할 수 있는 인재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며, 윤리적 합의를 이끌어낸다. AI 생태계가 확장될수록 기술력보다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 생태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최 회장이 강조한 협력은 바로 이 연결과 신뢰의 기술, 다시 말해 “혼자 만든 천재보다 함께 만든 전략가”의 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